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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앙코르시계복원작업장을 운영하는 (주)앵커랩입니다.
지난 1월, 문화재수리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화유산 담>에 (주)앵커랩의 기고문에 실렸습니다.
앙코르시계복원작업장의 이야기와 활동내용, 산업 현장에서의 고민을 담았습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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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치를 발견하고 복원합니다
근현대 소장품을 복원하는 세운상가 앵커랩
먼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앵커랩은 ‘가치를 발견하고 복원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세운상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앵커(Anchor)는 시계 태엽이 풀리며 제공하는 동력 에너지를 분절된 '시간' 개념으로 만들어주는 시계 무브먼트의 주요 부속입니다. 마지막 사람, 안전, 단단히 붙잡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지요. 사라져가는 산업 생태계와 복원 기술, 그리고 고치는 문화를 붙잡는 제도적 장치이자 앵커공간을 목표로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운상가 메이커스큐브에 있습니다.
기능을 가진 소장품의 범위
앵커랩은 ‘기능’을 가진 소장품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기계적-전자적 원리로 구동하는 생활용품과 도구 혹은 장치들이 그 대상이지요. 이들은 분해-조립의 과정에서 부속을 세척-복원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구조도, 회로도, 수리 매뉴얼 등 수리-복원 작업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거나, 보편적인 메뉴얼과 기술서가 존재하지요. 작업을 수행하는 분이 관련 기술 분야에 풍부한 경험이 있다면 해당 자료가 없이도 충분히 복원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외관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근현대 소장품을 다루는 앵커랩에는 소재보다는 기능 중심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소재의 화학적 구성이라던가, 마모의 정도 등을 정밀 기기를 활용해 세밀히 파악하지는 않지요. 다만 기계의 기능과 직접 연관되는 부품의 물리적 마모 정도 등에 대해서는 루페라고 불리는 확대경과 현미경을 통해 확인합니다. 재료를 활용해 특정한 ‘형태’를 만들고, 기계적-전자적 원리를 중심으로 대상물을 이해하는 역량이 있어야 하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고 해설하는 배경도 기계적이고 전자적 원리와 실체에 기반을 둡니다.
근현대 소장품 복원의 과정과 내용
앵커랩이 다루는 소장품들은 공예품이기보다는 ‘산업품’에 가까운 근현대 유물들입니다. 근현대 산업사, 상업사, 기업사, 제조공정에 대한 미시적인 이해, 이를 위한 자료조사와 구술 채록이 필요하지요. 박물관과 같은 문화기관에서 학예사,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 기록학을 전공한 아키비스트들의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입니다. 다양한 자료들을 발굴해야 하지만 그 지점이 광활한 현장과 자료들에 포진해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목표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 사이의 유기적 협업이 필요한 것이지요. 자료가 풍부할수록, 복원의 과정과 기록도 다채로워집니다.
근현대 소장품, 복합재질의 소재와 기계장치, 전자기기로 구성된 물건을 고치기 위해서는 소공구를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계와 같이 작고 정밀한 사물일수록 공구들 또한 그것들을 이용하고 유지하는 지침들이 세밀하고 복잡합니다. 종류도 많고요. 전통적인 문화재 복원 영역에서 치공구와 같은 의과기기를 많이 쓰는 것을 봤는데,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계 복원의 경우 제조국(스위스, 미국 등)에서는 크게 산업화 및 전문화된 분야기 때문에, 세부 작업에 특화된 도구와 설비들이 대부분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watch)는 ETA와 같은 범용 무브먼트는 그 구조도와 매뉴얼 및 부속에 대한 도면과 설명 자료들이 전면 공개되어있으며, 개별 부속 또한 구매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시계들은 대부분 이렇게 공개된 자료들에 기반을 둔 수리작업이 가능하죠.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의 1910년대 생산된 월쌈(Waltham) 회중시계와 같이, 초기 산업화 시기 생산된 소장품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계의 주요 기능 장치들을 확인한 후 (기어 트레인의 윤열 방식, 동력 구동원 등) 시계학(horology) 이론과 실무 지침에 따라 분해의 순서를 결정하고, 부속의 형태와 특성 및 주요 기계 부속의 마찰 정도를 파악하여 도구와 화학 약품(세척액-린싱액-주유액)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능상의 이슈가 있는 마모된 부속은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복원 방식 혹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의 수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지요.
시계 기술 분야 중에서도 다양한 전문영역을 지니고 있는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복원 작업과 관련한 합의점을 찾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반(lathe)작업을 통해 금속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인, 세밀한 붓질과 프린팅, 조색 작업에 특화된 문자판 기술인, 땜에 특화된 금속공예인, 대형 시계의 동력원을 다룰 수 있는 전기 기술인 등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조금씩 다르지요. 소장자가 복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라는 점에서도, 물건을 고치는 작업은 그것을 만드는 일과는 다릅니다. 소장자가 지켜야 하는 가치, 유물에 대한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시간이 맞지 않아도 좋으니 움직이게만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더없이 기쁠 때도 있습니다. 훼손이 심각한 시계들을 ‘완벽하게’ 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사전 포기하거나, 부품 대부분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움직이게만 해주세요, 잡음이 들려도 좋으니 작동만 하게 해주세요’와 같은 요청은 저희 업계에서는 ‘소장품의 진위성(originality)을 보존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의미로 통합니다.
앵커랩은 영국시계학협회(British Horological Institute)에 등록하고 교재를 공유받아 한국의 시계 학습 환경에서 취약한 이론 부분을 보완하였습니다. 역사성 있는 클락(clock)과 손목시계(watch) 무브먼트의 구조들에 대한 상세 설명과 그림자료 뿐 아니라, 부속의 정확한 명칭을 이해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어요.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월간지를 통해 영국의 시계 복원 사례를 실시간으로 리뷰하기도 합니다. 스위스,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오래된 제조사들은 독립적으로 수준 높은 실물-문서 아카이브와 전시 환경, 그리고 전문 연구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문 수집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미래에 전달할 유산을 만들어나가죠. 영국 지역 내에서 구축된 기술인 네트워크와 교육 인프라를 통해, 한국이라는 먼 나라의 작업장도 혜택을 받습니다.
레거시(Legacy) 산업에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근현대 소장품의 기능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은 ‘한정된 시간’동안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역량입니다. 이론도 중요하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참고자료들을 발굴해내는 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전제는 ‘한정된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원 영역도 결국에는 문화 ‘산업’영역에 속하니까요.
복원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물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축적된 지식입니다. 유물을 한눈에 보고도 수많은 경험과 기억, 그리고 부품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지역 장인의 노하우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성비 높은 자산이지요. 장인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분화되고 전문화된 산업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조직할 수 있는 역량도 앞으로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근현대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사람들은 전자제품 수리 기술자와는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운상가 일대의 장인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르고요. 전자제품 수리는 (현재에는 사라졌지만) 고등학교 이과 과정과 공대 관련 기본 교육을 받고 특정한 기능 훈련, 산업체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노하우는 장인의 곁에서 경험을 쌓으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가치’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시선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복원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판단을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개인적 견해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근현대 문화재 복원 영역에서의 전문가입니다.
앵커랩은 또한 기술에 대한 ‘감리’와 ‘해설’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명칭을 사용해 기술을 설명하고 있고, 가능하다면 해제와 해설까지도 제공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 ‘기록화’ 예산이 포함된 기관의 복원 의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업적 가치를 잃어가는 전통 제조업에서 남아있는 유무형의 유산을 문화적 가치로 전환해 이어나가는 데에는 공동체적 노력이 요구됩니다. 한 번 사라진 기술을 다시 재현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과 남아있는 기술을 보존하는 데 투자해야 하는 예산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훨씬 경제적이면서도 사회적 효용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세운지역에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실함으로 시작점에 섰지만, 서툴고 무지하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매일 실감합니다. 이 여정을 가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이들의 정성과 열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때, 문화재수리협회의 제안을 받아 산업전에 참여하고 원고작성의 기회도 얻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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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앙코르시계복원작업장을 운영하는 (주)앵커랩입니다.
지난 1월, 문화재수리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화유산 담>에 (주)앵커랩의 기고문에 실렸습니다.
앙코르시계복원작업장의 이야기와 활동내용, 산업 현장에서의 고민을 담았습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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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치를 발견하고 복원합니다
근현대 소장품을 복원하는 세운상가 앵커랩
먼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앵커랩은 ‘가치를 발견하고 복원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세운상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앵커(Anchor)는 시계 태엽이 풀리며 제공하는 동력 에너지를 분절된 '시간' 개념으로 만들어주는 시계 무브먼트의 주요 부속입니다. 마지막 사람, 안전, 단단히 붙잡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지요. 사라져가는 산업 생태계와 복원 기술, 그리고 고치는 문화를 붙잡는 제도적 장치이자 앵커공간을 목표로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운상가 메이커스큐브에 있습니다.
기능을 가진 소장품의 범위
앵커랩은 ‘기능’을 가진 소장품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기계적-전자적 원리로 구동하는 생활용품과 도구 혹은 장치들이 그 대상이지요. 이들은 분해-조립의 과정에서 부속을 세척-복원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구조도, 회로도, 수리 매뉴얼 등 수리-복원 작업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거나, 보편적인 메뉴얼과 기술서가 존재하지요. 작업을 수행하는 분이 관련 기술 분야에 풍부한 경험이 있다면 해당 자료가 없이도 충분히 복원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외관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근현대 소장품을 다루는 앵커랩에는 소재보다는 기능 중심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소재의 화학적 구성이라던가, 마모의 정도 등을 정밀 기기를 활용해 세밀히 파악하지는 않지요. 다만 기계의 기능과 직접 연관되는 부품의 물리적 마모 정도 등에 대해서는 루페라고 불리는 확대경과 현미경을 통해 확인합니다. 재료를 활용해 특정한 ‘형태’를 만들고, 기계적-전자적 원리를 중심으로 대상물을 이해하는 역량이 있어야 하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고 해설하는 배경도 기계적이고 전자적 원리와 실체에 기반을 둡니다.
근현대 소장품 복원의 과정과 내용
앵커랩이 다루는 소장품들은 공예품이기보다는 ‘산업품’에 가까운 근현대 유물들입니다. 근현대 산업사, 상업사, 기업사, 제조공정에 대한 미시적인 이해, 이를 위한 자료조사와 구술 채록이 필요하지요. 박물관과 같은 문화기관에서 학예사,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 기록학을 전공한 아키비스트들의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입니다. 다양한 자료들을 발굴해야 하지만 그 지점이 광활한 현장과 자료들에 포진해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목표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 사이의 유기적 협업이 필요한 것이지요. 자료가 풍부할수록, 복원의 과정과 기록도 다채로워집니다.
근현대 소장품, 복합재질의 소재와 기계장치, 전자기기로 구성된 물건을 고치기 위해서는 소공구를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계와 같이 작고 정밀한 사물일수록 공구들 또한 그것들을 이용하고 유지하는 지침들이 세밀하고 복잡합니다. 종류도 많고요. 전통적인 문화재 복원 영역에서 치공구와 같은 의과기기를 많이 쓰는 것을 봤는데,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계 복원의 경우 제조국(스위스, 미국 등)에서는 크게 산업화 및 전문화된 분야기 때문에, 세부 작업에 특화된 도구와 설비들이 대부분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watch)는 ETA와 같은 범용 무브먼트는 그 구조도와 매뉴얼 및 부속에 대한 도면과 설명 자료들이 전면 공개되어있으며, 개별 부속 또한 구매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시계들은 대부분 이렇게 공개된 자료들에 기반을 둔 수리작업이 가능하죠.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의 1910년대 생산된 월쌈(Waltham) 회중시계와 같이, 초기 산업화 시기 생산된 소장품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계의 주요 기능 장치들을 확인한 후 (기어 트레인의 윤열 방식, 동력 구동원 등) 시계학(horology) 이론과 실무 지침에 따라 분해의 순서를 결정하고, 부속의 형태와 특성 및 주요 기계 부속의 마찰 정도를 파악하여 도구와 화학 약품(세척액-린싱액-주유액)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능상의 이슈가 있는 마모된 부속은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복원 방식 혹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의 수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지요.
시계 기술 분야 중에서도 다양한 전문영역을 지니고 있는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복원 작업과 관련한 합의점을 찾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반(lathe)작업을 통해 금속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인, 세밀한 붓질과 프린팅, 조색 작업에 특화된 문자판 기술인, 땜에 특화된 금속공예인, 대형 시계의 동력원을 다룰 수 있는 전기 기술인 등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조금씩 다르지요. 소장자가 복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라는 점에서도, 물건을 고치는 작업은 그것을 만드는 일과는 다릅니다. 소장자가 지켜야 하는 가치, 유물에 대한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시간이 맞지 않아도 좋으니 움직이게만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더없이 기쁠 때도 있습니다. 훼손이 심각한 시계들을 ‘완벽하게’ 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사전 포기하거나, 부품 대부분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움직이게만 해주세요, 잡음이 들려도 좋으니 작동만 하게 해주세요’와 같은 요청은 저희 업계에서는 ‘소장품의 진위성(originality)을 보존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의미로 통합니다.
앵커랩은 영국시계학협회(British Horological Institute)에 등록하고 교재를 공유받아 한국의 시계 학습 환경에서 취약한 이론 부분을 보완하였습니다. 역사성 있는 클락(clock)과 손목시계(watch) 무브먼트의 구조들에 대한 상세 설명과 그림자료 뿐 아니라, 부속의 정확한 명칭을 이해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았어요.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월간지를 통해 영국의 시계 복원 사례를 실시간으로 리뷰하기도 합니다. 스위스,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의 오래된 제조사들은 독립적으로 수준 높은 실물-문서 아카이브와 전시 환경, 그리고 전문 연구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문 수집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미래에 전달할 유산을 만들어나가죠. 영국 지역 내에서 구축된 기술인 네트워크와 교육 인프라를 통해, 한국이라는 먼 나라의 작업장도 혜택을 받습니다.
레거시(Legacy) 산업에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근현대 소장품의 기능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은 ‘한정된 시간’동안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역량입니다. 이론도 중요하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참고자료들을 발굴해내는 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전제는 ‘한정된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원 영역도 결국에는 문화 ‘산업’영역에 속하니까요.
복원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물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축적된 지식입니다. 유물을 한눈에 보고도 수많은 경험과 기억, 그리고 부품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지역 장인의 노하우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성비 높은 자산이지요. 장인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분화되고 전문화된 산업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조직할 수 있는 역량도 앞으로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근현대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사람들은 전자제품 수리 기술자와는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운상가 일대의 장인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르고요. 전자제품 수리는 (현재에는 사라졌지만) 고등학교 이과 과정과 공대 관련 기본 교육을 받고 특정한 기능 훈련, 산업체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노하우는 장인의 곁에서 경험을 쌓으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가치’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시선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복원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판단을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개인적 견해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근현대 문화재 복원 영역에서의 전문가입니다.
앵커랩은 또한 기술에 대한 ‘감리’와 ‘해설’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명칭을 사용해 기술을 설명하고 있고, 가능하다면 해제와 해설까지도 제공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 ‘기록화’ 예산이 포함된 기관의 복원 의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업적 가치를 잃어가는 전통 제조업에서 남아있는 유무형의 유산을 문화적 가치로 전환해 이어나가는 데에는 공동체적 노력이 요구됩니다. 한 번 사라진 기술을 다시 재현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과 남아있는 기술을 보존하는 데 투자해야 하는 예산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훨씬 경제적이면서도 사회적 효용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세운지역에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실함으로 시작점에 섰지만, 서툴고 무지하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매일 실감합니다. 이 여정을 가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이들의 정성과 열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때, 문화재수리협회의 제안을 받아 산업전에 참여하고 원고작성의 기회도 얻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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